반응형

 

최근에 마션이나 프로젝트 헤일메리 같은 SF 소설을 재밌게 읽고 또 재밌는 SF책 없나 해서 찾아보게 된 소설입니다. SF 소설이라고 하면 등장하는 용어가 어렵거나, 다루는 주제가 무겁고 디스토피아적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따듯하고 산뜻한 소설이었습니다. 소재는 SF이지만 던지는 질문들을 보면 뭔가 철학책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짧은 단편들을 모아둔 소설집이라 출퇴근길에 짬내서 읽기에도 부담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지금 제 기억에 가장 남는건 첫 작품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입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땐 '아 역시 디스토피아 SF구나!'라고 착각을 했습니다ㅋㅋ 아이들만 남겨진 고립된 마을, 성인식에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 무슨 영화 미드소마에 나오는 마을처럼 뭔가 기괴한 전통을 가지고 있어서 순례자들을 희생시키는 건 줄 알았죠... 애니 약속의 네버랜드처럼 다 큰 애들을 괴물들 먹이로 보내버린다던지ㅋㅋ;; 하지만 알고 보니 그렇게 극악무도한 건 아니었고 말 그대로 밖으로 나가서 현실을 마주하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을은 차별이나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곳이지만 순례자들은 나이가 차면 마을 밖으로 나가 차가운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 현실을 견디지 못하겠다 싶으면 마을로 돌아오는 것이고, 괴롭지만 그래도 이 현실을 마주하고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는 순례자들은 돌아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화자 데이지가 이 순례의 이유, 마을의 역사와 비밀에 대해 조사하면서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내레이션 스타일이 되게 독특했습니다. 마을의 설립자인 릴리, 릴리의 과거를 조사하는 그녀의 딸 올리브, 그런 릴리와 올리브를 조사하는 데이지, 그리고 데이지가 편지를 남기는 친구 소피까지... 누군가가 남긴 영향력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전달되어 내려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아서 이 편지를 읽게 된 소피 또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되겠죠.     

 

바이오해커였던 릴리는 자신이 가진 흉터로 인해 차별을 당하며 살았고, 그런 '결함'이 없는 완벽한 사람들은 탄생시킨다면 차별이 없어질거라고 생각하고 인간 배아 디자인을 통해 건강하고, 외적으로도 완벽한 '신인류'를 탄생시킵니다. 하지만 이 신인류의 탄생으로 인해 오히려 사회의 차별이 더 강화된 것을 보고 환멸을 느낀 릴리는 잠수를 타고 새로운 마을을 설립합니다.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곳,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 다양함으로 인정받는 곳, 결함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그 어떤 곳보다 완벽한 파라다이스입니다. 하지만 많은 순례자들은 아무리 현실이 차갑고 잔인해도 그곳에서 남아 사랑하는 사람과 사는 것을 선택합니다. 데이지가 마을에서 만난 순례자는 연인이 죽어서 마을로 돌아온 사람이었죠. 저의 선입견과는 다르게  '그 어떤 파라다이스보다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게 더 행복하다'라는 희망적이고 따뜻한 메시지를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질병을 없애고, 수명을 늘리고, 우수한 사람을 탄생시킨다는 내용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거라서 '신인류'의 세상이 가진 문제점이 와닿았습니다. 그냥 발전된 기술력으로 건강하게 태어나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또 다른 차별을 낳고, 사회가 더 분열될 수도 있다는 생각 못했던 문제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첫 작품과 마찬가지로 이 책의 다른 단편들도 따뜻하고 희망적이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던저줍니다. SF적인 소재가 등장하긴 하지만 어렵지 않고 접근성이 좋습니다. SF 입문작으로 좋을듯 합니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