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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요즘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외국 작가 중 한명인듯 합니다. 커뮤에서 추천글을 자주봐서 그런지 작가의 책을 읽어본적 없던 저에게 조차 익숙했던 이름입니다. 무작정 작가가 최근에 쓴 책인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을 읽었는데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작가에 대해 안좋은 첫인상을 가지고 있던 중 마침내 그의 대표작이라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왜 그렇게 유명했는지 단박에 이해 했습니다 ㅋㅋ 추리는 둘째치고 일단 드라마적 구성이 정말 좋네요. 출퇴근길에 읽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지하철에서 내리기 싫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보통 추리물들은 범인의 정체와 범죄 수법을 추리를 통해 알아가는 과정이 주요 스토리인데, 이 책은 처음부터 사건의 전말, 범인과 공범의 정체를 다 알려줍니다. 하나오카 야스코와 그녀의 딸 미사토는 그들을 예전부터 괴롭혀 온 전 남편 도미가시 신지를 충동적으로 살해하게 됩니다. 옆집에 살던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자 천재 수학자 이시가미 데츠야는 살인을 저지른 후 어쩔 줄 몰라하는 모녀를 위해 사건을 은폐하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줍니다. 이시가미가 디자인한 완벽범죄를 파헤치는 상대는 바로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 마나부입니다.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경찰들의 수사를 종종 도와주며 "탐정 갈릴레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대학교 동창으로, 서로의 천재성을 익히 알고 인정하던 동료였으나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 둘은 학회가 아닌 살인 사건 조사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됩니다. 서로 체스를 두듯 이시가미가 설치해 놓은 트릭으로 경찰 조사에 혼선을 주면 유가와는 이시가미의 수를 간파하며 다음 수를 예측합니다. 모녀의 안쓰러운 상황과 이시가미의 헌신에 동정하며 그들을 응원하다가도, '그래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라는 양가감정을 느끼면서 작품 내내 손에 땀을 쥐고 읽었습니다.

결국 유가와로 인해 궁지에 몰린 이시가미는 마지막 한수를 둡니다. 자신이 설치해 놓은 여러 장치들이 다 간파당했을 경우, 그런 최악의 상황까지 계산한 그의 최후의 한 수는 바로 자신이 직접 범인으로 자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자수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자수가 거짓이라면 결국엔 들통날 것이기에, 본인이 진짜로 살인을 저질러서 진짜 범인이 되기로 합니다. 그는 기존의 사건과는 아무 관계없는 노숙자를 죽이고 이미 죽은 도미가시인 것처럼 위장하여, 두개의 살인 사건을 하나의 사건인양 뒤섞어버리고 수사에 혼선을 일으킵니다. 형사들은 도미가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엉뚱한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 야스코에게 묻고 있었고, 야스코는 그 사건 당일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죠.

초반부터 동네 노숙자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게 나왔는데, 이시가미의 뛰어난 관찰력을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이게 사실은 어마어마한 떡밥이었습니다ㄷㄷ 살인 동기로는 야스코를 지키기 위해 전 남편을 살해했다고 고백하며 자신이 하나오카 야스코의 스토커임을 자처합니다. 이시가미가 스토커스럽게 행동할때마다 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은 자수할 때 상황까지 계산해서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었다니ㅠㅠ 사회성 떨어지는 변태라고 욕하면서 읽었는데 미안하다...ㅠㅠ

작품 제목에 나오는 '헌신'이란 당연히 야스코를 향한 이시가미의 말도 안 되는 헌신입니다. 작품 내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마지막에 살짝 이시가미의 사연이 나옵니다. 이시가미가 야스코에게 품고 있던 감정은 사실 변태적이거나 이성적인 감정이라기보단 그냥 아름다운 것은 지켜주고 싶은 순수한 감정이었습니다. 그들은 알지 못했지만 그 모녀는 자살까지도 생각하던 이시가미의 무의미한 삶에 남아 았던 일말을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름답다고 하긴 힘들지만 대단한 희생과 사랑인 것은 맞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런 헌신도 마지막엔 야스코의 자수로 무의미하게 되었지만... 감정표현이 없던 이시가미가 짐승처럼 포효하는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작품의 메인 주제와는 좀 동떨어진 내용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야스코의 썸남인 구도가 상당히 거슬리더군요. 야스코 호스티스 시절에 단골 손님이었다던데, 무슨 옛날 절친처럼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게 저로서는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그때 구도는 유부남이었고, 구도의 와이프는 암투병 중이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위로받기 위해서 호스티스인 야스코를 보러 갔다고...;; 웃긴 게 작품 내에선 구도가 매너 있고 멋진 남자인 것처럼 나오고, 야스코는 구도의 가슴 아팠던 상황을 몰랐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를 동정합니다. 제가 볼 땐 그냥 무책임한 개객기 유부남과 호스티스(여기도 애 있는 유부녀..)의 불륜인 거 같은데 아련한 로맨스인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침투해서 읽으면서도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게 되던... 이런 게 성진국 니혼의 흔한 문화...?? (아직도 혼란) 이시가미의 헌신과 비교군으로 등장한 거 같은데 어... 둘 다 정상은 아니라서 어떻게 비교를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ㅋㅋ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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