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줄거리 및 평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씨 코믹스의 빌런 캐릭터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 <조커>. 액션/오락성을 강조한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며, 점점 악인으로 타락해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는 어두운 작품입니다. 히어로 영화로는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품성뿐만 아니라, (제작사 워너의 예상과는 달리)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합니다. 이런 흥행과는 별개로 많은 논란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히어로 영화를 잘 안 보지만, '조커'는 심리묘사에 집중한 드라마 장르라는 말을 듣고 완전 제 취향 같아서 큰 맘먹고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부모님과 같이 봤는데, 두 분도 엄청 집중해서 보시고, 영화 끝난 후에도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시더라고요. 영화가 얼핏 보면 완전 마이너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대중적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강렬합니다. 오롯이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그의 병들고 피폐해진 정신이 난폭하고 광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온몸을 내던지는 미친 연기 또한 관객들을 사로잡는 큰 요소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상파 특유의 생동감. 거친 붓자국. 진한 채색과 뚜렷한 음영에서 오는 강렬함. 그러고 보니 반 고흐도 아서처럼 정신 질환을 앓으며 불행한 삶을 보냈네요. 차가운 음울함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반 고흐의 그림과 영화 조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우울과 절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흔히 우리가 '쾌감', '전율'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 '카타르시스'의 진짜 의미는 '현실에서 풀 기회가 없는 응어리를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에 슬퍼하여 해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인물에게 자신인 것처럼 몰입, 결과적으로 자기 연민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고 합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욱 자유롭고 활기차게 변하는 아서도 비극처럼 보이던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를 만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해석을 합니다. 비극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이성의 구속을 벗어나 해탈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몰렸을 때 아서는 지금까지 그를 억누르던 책임과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를 걱정해주던 직장 동료는 거짓말로 그를 배신하고, '세상에 웃음을 가져다줘야 한다'라고 당부를 하던 그의 엄마는 알고 보니 지금 아서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며, 그가 항상 동경하던 롤모델은 그의 꿈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다 아서에게 살해당합니다.
조커는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하는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집에 두 직장 동료가 찾아왔을 때, 조커는 그를 배신한 동료는 가차 없이 죽였지만 다른 동료는 순순히 보내주었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소피 (망상 속에서 아서의 연인) 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 보면서 조커가 소피도 죽인 줄 알고 왜 죽인 건지 이해가 안 가서 혼란스러웠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감독 피셜, 소피는 아서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조커에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아서를 비웃거나 무시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삶보다 죽음이 더 가치 있었으면 좋겠다던 아서. 그는 드디어 그 가치를 찾습니다. 그의 죽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말이죠. 그 연극 '햄릿'에서 나오는 말처럼, 조커의 "광증"에도 묘한 "조리"가 있습니다.
아서의 삶을 이해하면 할수록 느끼는 연민과 안쓰러움, 하지만 옹호할 수 없는 조커의 잔혹함에서 오는 거부감... 이 두 감정이 충돌하며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악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닌데 왜 유독 조커를 보면서 이런 불편함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픽션으로 치부하기엔 인물들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나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개봉해서는 안될 영화가 나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이해가 갑니다. 뉴스에서 미친 범죄자들이 너도 나도 정신 질환 있다면서 감형받는 걸 보면 속이 터지는데, 영화에서 조커도 마지막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보단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상담원을 죽이고 탈출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유쾌한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이 됩니다. 비극적으로만 느껴지던 조커의 삶도 이젠 그에게 하나의 코미디에 불과합니다. 망가진 조커에겐 모든 게 코미디 일 뿐이지만, 고아가 된 어린 브루스에게는 이제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런과 히어로 둘 다 공통적으로 비극을 통해서 탄생합니다. 빌런과 히어로의 차이는 그 비극의 엔딩에 달려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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