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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줄거리 및 평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씨 코믹스의 빌런 캐릭터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 <조커>. 액션/오락성을 강조한 일반적인 히어로 영화와는 궤를 달리하며, 점점 악인으로 타락해가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는 어두운 작품입니다. 히어로 영화로는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작품성뿐만 아니라, (제작사 워너의 예상과는 달리) 전 세계에서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합니다. 이런 흥행과는 별개로 많은 논란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영화이기도 합니다. 

 

내가 웃어도 웃는게 아니야

개인적으로 저는 히어로 영화를 잘 안 보지만, '조커'는 심리묘사에 집중한 드라마 장르라는 말을 듣고 완전 제 취향 같아서 큰 맘먹고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부모님과 같이 봤는데, 두 분도 엄청 집중해서 보시고, 영화 끝난 후에도 장면 하나하나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누시더라고요. 영화가 얼핏 보면 완전 마이너 할 것 같지만, 의외로 대중적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스토리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며 강렬합니다. 오롯이 주인공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그의 병들고 피폐해진 정신이 난폭하고 광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냅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온몸을 내던지는 미친 연기 또한 관객들을 사로잡는 큰 요소입니다.

 

'조커'로 다시 태어난 아서

개인적으로 저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인상파 특유의 생동감. 거친 붓자국. 진한 채색과 뚜렷한 음영에서 오는 강렬함. 그러고 보니 반 고흐도 아서처럼 정신 질환을 앓으며 불행한 삶을 보냈네요. 차가운 음울함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반 고흐의 그림과 영화 조커... 이런 걸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우울과 절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흔히 우리가 '쾌감', '전율'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 '카타르시스'의 진짜 의미는 '현실에서 풀 기회가 없는 응어리를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에 슬퍼하여 해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비참한 상황에 빠진 인물에게 자신인 것처럼 몰입, 결과적으로 자기 연민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고 합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렸을 때 오히려 어느 때보다 더욱 자유롭고 활기차게 변하는 아서도 비극처럼 보이던 자신의 삶을 통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올라갈땐 힘겹게 느껴지던 계단이 내려올땐 너무나 즐겁고 쉽다  

'카타르시스'라는 용어를 만든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해석을 합니다. 비극적인 체험을 하는 인간은 자신의 한계와 무력함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이성의 구속을 벗어나 해탈과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절망적인 상황까지 몰렸을 때 아서는 지금까지 그를 억누르던 책임과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집니다. 그를 걱정해주던 직장 동료는 거짓말로 그를 배신하고, '세상에 웃음을 가져다줘야 한다'라고 당부를 하던 그의 엄마는 알고 보니 지금 아서를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며, 그가 항상 동경하던 롤모델은 그의 꿈을 비웃습니다. 그리고 이 세 사람은 다 아서에게 살해당합니다.

 

뒤로 갈수록 춤도 잘춘다. 더이상 어색하거나 우스꽝스럽지 않고 우아하고 편안하다

조커는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하는 미치광이가 아닙니다. 집에 두 직장 동료가 찾아왔을 때, 조커는 그를 배신한 동료는 가차 없이 죽였지만 다른 동료는 순순히 보내주었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소피 (망상 속에서 아서의 연인) 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영화 보면서 조커가 소피도 죽인 줄 알고 왜 죽인 건지 이해가 안 가서 혼란스러웠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감독 피셜, 소피는 아서에게 해를 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에서 조커에게 죽은 사람들은 모두 아서를 비웃거나 무시했던 사람들입니다. 그의 삶보다 죽음이 더 가치 있었으면 좋겠다던 아서. 그는 드디어 그 가치를 찾습니다. 그의 죽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말이죠. 그 연극 '햄릿'에서 나오는 말처럼, 조커의 "광증"에도 묘한 "조리"가 있습니다.

 

아서의 삶을 이해하면 할수록 느끼는 연민과 안쓰러움, 하지만 옹호할 수 없는 조커의 잔혹함에서 오는 거부감... 이 두 감정이 충돌하며 껄끄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악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닌데 왜 유독 조커를 보면서 이런 불편함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픽션으로 치부하기엔 인물들이나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나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개봉해서는 안될 영화가 나왔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이해가 갑니다. 뉴스에서 미친 범죄자들이 너도 나도 정신 질환 있다면서 감형받는 걸 보면 속이 터지는데, 영화에서 조커도 마지막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보단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며, 상담원을 죽이고 탈출하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모습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유쾌한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연출이 됩니다. 비극적으로만 느껴지던 조커의 삶도 이젠 그에게 하나의 코미디에 불과합니다. 망가진 조커에겐 모든 게 코미디 일 뿐이지만, 고아가 된 어린 브루스에게는 이제부터 비극이 시작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런과 히어로 둘 다 공통적으로 비극을 통해서 탄생합니다. 빌런과 히어로의 차이는 그 비극의 엔딩에 달려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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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하고는 많이 다른 코믹하고 밝은 포스터

 

 

NEW 제공/배급 외유내강 제작

 

감독 : 최정열

 

출연 : 마동석, 박정민, 정해인, 염정아

 

줄거리: 정체불명 단발머리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을 만난 어설픈 반항아 ‘택일’(박정민)과 무작정 사회로 뛰어든 의욕충만 반항아 ‘상필’(정해인)이 진짜 세상을 맛보는 유쾌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

 

작가 조금산이 다음에서 연재했던 웹툰 '시동'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원작 캐릭터들과 싱크로 높은 캐스팅, 데뷔작 '글로리 데이'로 이름을 알린 최정열 감독과 '베테랑'과 '엑시트'의 제작진의 참여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원작 시동의 느낌

주인공인 동네 양아치 택일이 무작정 감행한 가출 후 우연히 들린 중국집에서 알바를 하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주된 내용입니다. 거칠고 투박한 그림체와 빛바랜듯한 색감이 특징인 웹툰이었는데,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굉장히 밝고 쨍하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코믹적인 요소가 더 강해졌습니다. 원작에서도 톡톡 튀는 대사들이 많긴 했지만, 그래도 코미디보단 드라마 요소가 더 컸거든요. 거칠고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을 깎아내고,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로 작품의 접근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쌈마이 3류 코믹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이 큰 마이너스인 듯. 이 작품은 성장물/드라마 장르이지 저질 코미디로 분류되면 안 되는데 포스터만 보면 오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ㅠㅠ   

 

배구선수 출신인 택일의 엄마

염정아 배우님의 캐릭터는 주인공인 택일의 엄마입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아들을 혼자 꿋꿋히 키우는 싱글맘입니다. 말보다는 손으로 엇나가는 아들을 바로잡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반항하는 택일... 특히 배구선수 출신이라 스매시 한방으로 택일을 기절시키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철없는 아들시키 줘패고 싶은 엄마의 진실의 미간
스파이크 날리는데 표정 넘 웃긴ㅋㅋ 
이렇게 또 매를 버는 택일... 이 구역의 공식 샌드백

예고편 캡쳐만 보면 코믹캐같은데 코믹캐 아닙니다ㅠㅠ 원작에선 말없고 조금 무서운 캐릭터... 하지만 표현 방법이 거칠뿐, 실제로는 아들이 정신 차리고 잘 살길 바라는 진심 어린 애정을 가진 엄마입니다. 

 

네... 딱 봐도 분량 없습니다ㅠㅠ 원작에선 초반과 후반에만 등장하고 중간에는 거의 출연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작사 프로듀서? 인스타그램에서 시나리오 쓸때부터 염 배우님은 염두했다고 하니, 캐릭터는 잘 뽑혔길 기대해봅니다.

 

올해 7월에 크랭크업했는데 12월 달에 개봉한다고 하니 개봉이 빠른 편입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죠? 특히 12월엔 한국 영화 대작 '백두산'과 '천문'이 대기하고 있어서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인데, 오히려 이럴 때 빈틈을 노리고 나오는 듯합니다. 지금 알려진 바로는 시동과 백두산이 18일쯤 거의 동시 개봉할 것 같다고 합니다 (추가: 개봉일 12월 18일로 확정 되었습니다). 아무리 틈새시장이라지만 조금이라도 텀을 둬야지 아니면 관 확보에서 밀릴 것 같은데... 씨제이의 백두산과 롯데의 천문 사이에서 새우등 터질 것 같은 느낌 ㅠㅠ 그래도 반전의 주인공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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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 [영화 리뷰] - [리뷰/후기] 영화 '시동' - 서툴고 요란하지만 일단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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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만 봐서는 감이 안오는 영화 <엑시트>

엑시트 줄거리 및 평가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고, 신파나 비극이 없는 재난 영화, <엑시트>. '유쾌한 재난 액션 영화'라는 소개를 듣고 그런 영화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에... 그게 가능하네요. 무거운 요소 없이 쫄깃한 긴장감과 유쾌함을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도심에서 어쌔신 크리드 찍는 (구) 산악 동아리 에이스 용남

이 영화는 대학교 산악 동아리 출신의 두 주인공이 유독 가스로 뒤덮인 도시를 탈출하는 내용입니다.  졸업 후 몇 년째 백수 생활 중인 용남(조정석)은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서 연회장에 취업한 후배 의주(임윤아)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갑자기 터진 가스 테러... 도시 전체가 패닉에 빠지고, 용남의 가족들과 의주는 유독 가스를 피해 건물 옥상으로 도망칩니다. 이러저러해서 가족들은 구조 헬리콥터로 떠나지만, 인원 초과로 결국 용남과 의주는 뒤에 남겨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클라이밍에 처돌아있는 산악인들이기에, 그 경험을 살려 건물과 건물 사이를 누비며 안전 구역으로 피합니다. 그들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드론을 통해 생중계되고, 그들은 가까스로 구조됩니다. 가스는 도심에 비가 내리며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용남은 가족들과 다시 만나고, 학생 때 좋아했던 의주와도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구조 신호 하나는 확실하게 배웠다.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테러범에게 구구절절한 사연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테러를 일으킨 범인에 대한 내용은 그냥 화학 회사에 원한을 가진 회사 직원의 소행이라는 짧은 뉴스가 전부입니다. 테러범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동기를 가졌는지, 그 빌런이 정의의 주인공과 어떤 관계인지, 앞으로 세상을 주인공이 어떻게 구해낼 것인지, 그런 거대한 마블 영화 급 스케일의 전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고 몰입하기가 좋았습니다. 

 

책임감 넘치고 똑똑한 의주ㅠㅠ 의주야 니가 점장해!!!

작품의 주인공들은 영웅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입니다. 집에서 구박받는 백수 취준생 용남. 성실하게 일해서 연회장의 부점장 위치까지 올라간 의주. 가스 앞에서 둘은 두려움에 벌벌 떨며 울음을 터트리지만, 결국엔 본인의 목숨보다 위기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살리며 올바른 선택을 내립니다. 그들이 엉엉 울 땐 짠하면서도 공감되고, 그러다 용기를 낼 땐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감정까지 올라옵니다.  

 

디스 이즈 코리안 파튀 스톼일!! (울 이모들 같아서 현실감 소오름ㅋㅋ)

이 영화에는 굉장히 한국적인 요소들이 많아서, 할리우드 재난 영화와는 차별화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시작할 때 등장하는 놀이터의 풍경이나 부모님 칠순잔치에서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노래하는 장면ㅋㅋ 또, 주인공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하고 있을 때, 그 장면을 방송하는 스트리머들과 시청자들.... 재난 영화에 안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장면이죠ㅋㅋㅋ 

 

영화의 단점을 꼽자면, 전개가 반복적이라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주인공에게 닥치는 위기와 도망, 가까스로 탈출하나 싶다가도 다시 찾아오는 위기, 그리고 또 도망... 생각해보면 스토리가 별거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별 거 없는 스토리였기 때문에 오히려 피로함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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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 킹 줄거리 및 해석

이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 90년대 디즈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디즈니 역대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무파사를 밀어버리는 스카. 둘 다 성우 목소리가 너무나 멋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바나를 다스리는 사자왕 무파사는 형제인 스카의 계략으로 인해 죽게 되고, 무파사의 아들 심바는 홀로 도망쳐 새로운 친구들인 티몬과 품바와 함께 근심과 걱정 없는 삶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낸 암사자 날라를 만나게 되고, 고향 프라이드 랜드가 스카의 폭정으로 파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심바는 자신 때문에 무파사가 죽었다고 생각하며 죄책감에 돌아가기를 거부합니다. 결국 심바는 잊었던 아버지의 가르침을 생각해내고, 앞으로 도망치기보단 왕으로서 사명과 책임을 다 하기로 합니다. 다시 고향에 돌아온 심바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왕의 자리를 되찾습니다. 그리고 프라이드 랜드도 질서와 평화를 회복합니다.

 

 

라이온 킹의 모티브가 된 햄릿

라이온 킹 vs 햄릿

 

죽은 아버지의 귀신을 만나고 각성한 후, 아버지를 죽이고 왕좌를 차지한 삼촌을 복수한다는 이 줄거리는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희곡, 햄릿을 떠올리게 합니다. 라이온 킹 제작진이 직접 햄릿의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했을 정도로 비슷한 갈등 구조와 캐릭터를 녹여냈습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은 엔딩입니다. 햄릿은 쓸데없는 삽질 끝에 결국 모두가 죽는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심바는 아버지 무파사처럼 훌륭한 왕이 됩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든 것일까요. 처음에 심바는 단순히 잘난 아빠를 둔 철없는 꼬맹이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여러 친구들과 아버지의 도움으로 성장하고, 마지막엔 다 같이 힘을 합쳐 고난을 이겨냅니다. 하지만 햄릿은 끝까지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려다 결국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고 나라까지 말아먹습니다.  무엇보다 무파사는 심바에게 스스로가 누구인지 기억하라는 조언만 해주었지, 복수를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심바는 스스로의 의지로 프라이드 랜드의 평화를 위해 왕이 된 것이죠. 햄릿은 아버지의 귀신이 나타나 직접 복수를 부탁했던 순간부터 비극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햄릿을 상징하는 끝없는 고뇌와 불분명한 선과 악의 경계는 각색되면서 단순화되거나 아예 제거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햄릿의 비극적인 스토리는 좀 더 단순한 권선징악의 형태를 띤 희망적인 스토리로 탈바꿈합니다.

 

 

생명의 순환 vs 하쿠나 마타타

 

라이온 킹엔 유명한 사운드트랙들이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선 이 영화를 상징하는 두 노래는 두 가지의 다른 인생철학을 나타냅니다. 

 

나주평야~발바리 치와와~

고난이 와도 희망을 가지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생명의 순환'.

 

하쿠나 마타타!!!

어쩔 수 없는 과거나 걱정은 잊어버리고 즐겁게 살아가라는 '하쿠나 마타타'

 

절망하고 있던 어린 심바에게 하쿠나 마타타는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고, 삶의 즐거움을 가르쳐 줍니다. 만약 햄릿에게도 티몬과 품바와 같은 친구들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심바에게 햄릿은 가지지 못한 여유와 긍정을 가르쳐줍니다. 하지만 심바가 끝까지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프라이드 랜드의 모든 동물들은 고통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심바는 아버지 무파사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고난이 와도 계속되는 '생명의 순환'처럼, 자신도 스스로의 위치와 책임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기로 합니다. 괴로운 일을 피하기보단 인정하고 싸워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상반되는 듯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철학은 살면서 모두 필수적입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죠.

 

어른이 된다는건 단순히 나이를 먹는게 아닌 나의 위치와 책임을 배우는 것

  라이온 킹은 어린이들의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모두가 공감하며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특히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과 죽음이 완성시키는 '삶의 순환'이란 무엇인지 더욱 곱씹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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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 줄거리 및 해석

이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형 스타일리쉬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명작. 2003년 개봉작인 이 영화는 개봉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에는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다가, 염정아 배우의 팬이 되고 이제야 각 잡고 보게 되었다. 장르는 공포이지만 무서움보단 슬프고 먹먹한 감정이 드는 작품이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고, 그 결과 죄책감 속에서 미쳐버리는 개인의 고통을 충격적으로 그려낸다. 

 

 

보면 볼수록 배우들 조합이 역대급ㅠㅠ

 

줄거리

 

서울에서 요양을 마친 언니 수미(임수정)와 동생 수연(문근영)이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같이 살게 되면서 겪는 갈등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죽은 친엄마를 대신해 동생 수연과 아빠를 챙기는 수미. 그리고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새엄마 은주. 수미는 친엄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은 은주를 증오하며, 은주는 친엄마를 쏙 빼닮은 수연에게 화풀이를 하며 학대를 일삼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존재하는데, 바로 동생인 수연은 이미 죽었고, 새엄마 은주는 수미의 또 다른 인격이었던 것.  영화 내내 등장하던 4인 가족은 수미가 보던 허상이고 실제로는 수미와 아빠 단 둘이서만 살았던 것이다. 

 

 수연이 죽게 된 상황은 이러하다.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절망한 친엄마는 옷장 안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다. 그리고 수연은 우연히 그 시신을 발견하고 꺼내려다 옷장을 넘어트려 그 밑에 깔리게 된다.  옷장이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와서 상황을 본 은주는 순간 못 본 척하고 나오지만 다시 구하러 돌아가는데, 하필 그 순간 복도에서 수미와 만나 말다툼을 하게 된다. 수미의 무례함에 화가 난 은주는 수연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수미가 집 밖으로 나가도록 놔둔다. 

 

 

지금봐도 살벌한 염정아와 임수정의 눈빛 연기

 

"너,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명심해."

 

 수미는 그날 결국 죽어가는 수연을 저버린체 돌아섰고, 은주의 말대로 수미는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해리성 장애를 겪으며 정신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수연과 친엄마의 영혼은 이승을 떠돌게 된다. 

 

 이 반전은 지금까지 등장인물들의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물건들, 그리고 이 집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수미의 현재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떨쳐 낼 수 없는 죄책감

 

 수미는 영화 내내 과잉보호처럼 보일 정도로 수연의 곁을 지키며 헌신하는데 언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 때문이다.  특히 수연은 친엄마를 똑 닮은 외모는 물론 소극적인 성격도 친엄마와 비슷해서, 수미의 보호적인 모습은 지키지 못한 친엄마를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은주가 애지중지하며 키운다는 두 마리의 새는 수연과 수미를 상징한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여리고 순수한 존재들. 새장 밑에서 둘이 나눈 대화도 의미심장하다. 

 

 

 

 

" 죽여버릴까? "
" 날려 보내... "
" 그 여자가 가져온 유일한 물건인데 건드리면 난리 날걸"

 

 은주에게 가장 소중했던 새. 그리고 수미에게 가장 소중했던 수연. 새와 수연 둘 다 다른 이들의 다툼에 죄 없이 희생되어 버린 억울한 생명이다. 새들을 날려 보내자는 수연의 말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고 싶어 했던 의지가 엿보인다. 새들의 죽음은 비극적인 두 자매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 그 자체였던 은주 역의 배우 염정아 

 

죄와 벌 

 

묘하게 비현실적이며 과장된 느낌의 새엄마는 수미가 상상하는 절대악의 인물이며,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격이다. 현실의 수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에, 수미가 증오해 마지않는 존재다. 수미를 매섭게 말로 몰아붙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랄하게 수연을 괴롭히는 악독한 계모. 수미의 허상 속에서 은주는 절대악이고 수미는 선의 역할을 되어, 은주에게서 수연을 구해내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만듦으로 수미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은주는 독립된 존재가 아닌 결국 수미와 같은 사람이며, 수미는 선과 악을 동시에 연기하는 인물이다. 은주가 내뱉은 가시 돋친 말과 폭력적인 행동은 수미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해와 같다.

 

"너 진짜 무서운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 날 도와줘 "
"그래, 내가 널 도와줄게. 여기서 끝내자. "

 
자신을 죽이려는 은주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수미. 은주는 수미가 과거의 기억을 잊을 수 있게 돕는 장치와 같다. 벌을 받음으로써 속죄하고자 하는 수미는 은주를 통해 스스로에게 고통과 시련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어떤 벌로도 씻어 낼 수 없는 죄의식은 그녀를 끊임없이 옥죄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게 한다. 이 영화의 유명한 OST인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제목만으로 이 영화의 주제를 요약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선택은 번복할 수 없기에, 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으로부터 수미는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바뀐 시간이 아니라 바뀌기 전의 시간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영화 초반에 수미가 처음 방에 들어서는 순간 엔딩을 암시하는 중요한 물건이 등장한다. 시간이 멈춰버린 고장 난 벽걸이 시계. 그리고 그 시계가 멈춘 시각은 바로 12시 45분, 수연이 죽던 날 장롱이 쓰러진 소리를 들은 시각이다. 그 시간에 멈춘 시곗바늘을 수미는 일부러 돌려버린다. 꼭 그 시간을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수미의 삶은 그 시계처럼 그 사건이 일어난 12시 45분에 멈춰버렸지만, 그녀는 그 순간을 차마 기억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그 날 돌아서지 않았던 그 자신을,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한 것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수미가 만든 허상의 세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수미의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곗바늘이 12시 45분을 가리키고, 수미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영화는 영원히 고쳐질 거 같지 않은 고장 난 시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시계가 꾸는 악몽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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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탐정 피카츄 - 줄거리 및 평가

이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 포켓몬에 미쳐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포켓몬을 빼놓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그 당시에 포켓몬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고, 아마 그 시절 학교를 다녔던 이들이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저녁에는 SBS에서 방송하는 TVA를 빠짐없이 챙겨보고, PC통신에서 레드/블루/옐로 버전별로 다운로드하여 플레이하며, 포켓몬 빵에서 나오는 스티커를 책받침에 정성스럽게 모으고, 극장에서 첫 번째 극장판 뮤츠의 역습을 보며 벅차오르는 감동에 울먹거리기도 하였으니. 지금은 포켓몬에 관심이 많이 시들었지만 그럼에도 어렸을 때 매일 상상하던 그 포켓몬 세계가 실사화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짜릿한 일이다. 그렇기에 영화 명탐정 피카츄는 제작 발표 때부터 많은 이들의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받았다. 일본 만화가 실사화되어서 좋은 평가를 받은 적은 아예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다행히도 포켓몬들의 디자인과 움직임은 현실적이면서도 기존의 개성과 귀여움을 잘 유지한다. 포켓몬들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지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상은 기대하면 안 되는 영화이다. 

 

 

이것은 결국 포켓몬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 

 

 주인공인 피카츄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하는 탐정이다. 뛰어난 추리력과 비밀스러운 과거, 그리고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감각까지. 이러한 다양한 능력과 개성을 가진 피카츄가 만들 수 있는 서사가 무궁무진할꺼라거 생각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다. 피카츄는 명탐정이지만 추리를 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백만 볼트나 전광석화 같은 기술도 사용하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피카츄는 멋진 활약상 대신 걸걸한 입담을 뽐내는 말동무의 포지션에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명탐정 피카츄'라는 제목과는 달리 피카츄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피카츄의 트레이너인 팀 굿맨이고, 이 영화는 그의 성장물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전투씬. 겉으로는 피카츄 vs. 뮤츠라는 어마어마한 상징성을 가진 두 포켓몬들의 격돌이지만 사실 피카츄는 포켓몬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해리 굿맨이고, 빌런인 뮤츠는 라임 시티의 전시장인 하워드 클리포드이다. 이 이야기는 포켓몬이 아닌, 포켓몬의 겉모습을 빌린 두 사람의 이야기인 것이다.  

 

 

명탐정 피카츄가 아닌 명탐정 해리

 해리 굿맨의 영혼은 기억을 잃은 상태로 피카츄의 몸에 들어가 있었지만, 마지막엔 뮤츠의 도움으로 인간의 몸을 되찾게 된다. 여러 사건을 겪으며 쌓아 올린 팀과 피카츄 사이의 유대감은 이 반전으로 인해 트레이너와 포켓몬의 관계가 아닌 부자관계로 변질된다. 그리고 피카츄는 영화 내내 보여주던 특유의 말투와 매력을 잃어버리고, 대신 우리에게 친숙한 귀여운 전기 뚱땡이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라이언 레이놀즈가 직접 등장하는 순간 주인공이 갑자기 바뀌어버린 거 같아서 묘한 배신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건 결국 명탐정 피카츄가 아니라 명탐정 해리 굿맨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뮤츠의 역습이 아닌 뮤츠의 억지 

 피카츄에 대적하는 뮤츠도 정체성이 불분명한 악역 캐릭터이다. 뮤츠는 극장판 1기 뮤츠의 역습을 오마주 하며 임팩트 있게 등장한다. 인간들에게 강한 적개심을 들어내며, 자신을 감히 이용하려 한 인간들을 오히려 역으로 지배하려는 무시무시한 포켓몬의 모습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뮤츠는 해리를 공격한 게 아니라 구해준 선한 캐릭터였고, 이 작품의 진정한 빌런 하워드 클리포드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며 세상을 구한다. 행동 동기와 이유에 대한 설명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뮤츠는 영화 내내 뒤죽박죽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인간은 악하지만 해리 굿맨은 괜찮은 사람이었으니 다른 인간들도 다 살려주겠다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다 보니, 뮤츠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캐릭터가 입체적이라 헷갈리는 게 아니라, 너무 설명이 부족하고 동기가 설득력이 없어서 헷갈리는 것이다.  

 

 

입체감 없는 인간 캐릭터들

 

 그렇게 포켓몬들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만들어진 인간 캐릭터들은 심지어 밋밋하며 매력이 없다. 주인공인 팀은 개성 없고 심심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포켓몬 트레이너의 꿈을 포기한 후 포켓몬에게 느끼는 애증의 감정이나 어머니의 죽음 이후 소원해진 아버지와의 관계같이 주인공에게 충분히 입체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너무 가볍게 다뤄지고 넘어간다. 그의 아버지인 해리 굿맨은 그냥 전설적인 명탐정으로 불리는데 그 외에 특별한 정보는 없다. 뮤츠가 실험실을 탈출할 수 있게 도왔다는 사실과 아들과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한다는 점 정도는 알 수 있지만, 그 정도만으로 이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들기엔 부족하다. 하워드 클리포드는 영화 최대의 반전을 가진 흑막 캐릭터이지만, 전개가 너무 억지스럽고 뻔해서 반전으로 느껴지지조차 않는다.  처음엔 사람들과 포켓몬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선량한 모습으로 나오지만 나중에는 세럼 R을 통해서 포켓몬들을 폭주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사람들과 포켓몬들을 합성해서 새로운 인류를 만드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체를 드러내는 반전의 순간에도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동기가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클리포드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한결같이 설명이 불충분하고 결과적으로 행동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표정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생동감 넘치는 피카츄의 모습에 영화 내내 광대가 아플 정도로 미소 지으며 봤지만 동시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포켓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포켓몬들이 중심이 되는 배틀 씬이나 포획 씬의 분량이 별로 없어서 멋있게 디자인해놓은 포켓몬들은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그렇게 포켓몬들은 푸대접하며 만들어 놓은 스토리는 허술하고 억지스러워서 피카츄의 귀여움에 비하면 그냥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정도이다.  포켓몬에 대한 추억이 사람이라면 무조건 봐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뻔하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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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앉은 대원(김윤석)의 시선이 신경쓰이는 두 가족의 포스터

 

영화 미성년 줄거리 및 해석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영화의 줄거리만 봤을 때는 좀처럼 끌리지 않는 불륜 소재의 막장 드라마 같았지만, 스카이캐슬로 인해 팬이 되어버린 염정아 배우님의 작품이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영화이다. 하지만 이젠 당당하게 추천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빠심'으로 참고 보는 영화가 아니라, 지나가는 장면 하나하나 곱씹게 만드는, 묘한 끌림을 가진 작품이라고.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대원(김윤석)과 미희(김소진)가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대원의 딸인 주리(김혜준)가 목격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미희의 딸인 윤아(박세진)는 주리와 같은 반 학생인 황당한 상황. 주리는 엄마 몰래 대원과 미희를 갈라놓기 위해 윤아에게 찾아가 따지지만, 윤아는 오히려 방관하는 태도로 나온다. 알고 보니 미희는 이미 임신 상태였고, 심지어 아이를 낳을 계획이었던 것. 주리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비밀로 하고 싶었지만, 결국 주리의 엄마, 영주(염정아)도 불륜 사실에 대해 알게 된다. 미희를 찾아간 영주는 미희의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나 작은 몸싸움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이었는지 미희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며 조산을 한다. 미희의 아이 '못난이'는 그 어떤 어른도 관심을 주지 않지만, 오직 윤아와 주리만이 그 아이에게 애정을 보인다. 하지만 못난이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윤아와 주리는 못난이의 죽음을 그들만의 방법으로 기억하기 위해 충격적인(...)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못난이를 화장하고 남은 뼛가루를 우유에 타서 마시는 것. 황당함을 넘어서서 역겨움까지 느껴질 수 있는 엔딩. 김윤석 감독이 수십 번의 수정과정을 거쳐서 만든 엔딩이라고 한다. 못난이의 죽음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무책임한 태도와 죄까지도 기억하자는 젊은이들의 반항정신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듯.

 

 여튼 상당히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의 포커스는 등장인물들과 그 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독특한 관계성에 있다. '불륜'이라는 소재를 어른이 아닌 아이들의 시점에서 다루기 때문에 상당히 담백하고 신선하게 다가오고, 결국 이 영화는 어른들의 치정극이 아닌 아이들의 성장물이라 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미성숙한 어른들의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성년'이라는 제목은 일으킨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미성숙한 어른들과, 그 어른들 대신 책임을 지며 성숙해져 가는 아름다운(美) 아이들을 이중적으로 표현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들이고, 어른은 결국 어른이구나, '라는 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윤아가 미희의 아이를 스스로 키우겠다며 너무나 쉽게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 또는 주리가 영주에게 전화에서 학원 땡땡이치고 같이 밥 먹고 싶다고 할 때. 순수한 두 아이들은 아직 어른들의 따뜻한 품과 현실적인 충고가 필요하지만, 이 영화엔 그런 완벽한 멘토 같은 어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제 많은 부모들은 '어른'이다. 순진하지만 거짓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직시하며, 온몸으로 부딪쳐서 강화 유리도 박살 내버리는 그런 패기를 가진 미성년이 아니라, 거짓된 마스크 뒤로 본심을 숨긴 체, 편리하게 현실을 외면해버리고 마는 어른들이다. 그리고 그런 거짓된 모습은 미희와 영주라는 강렬하게 대비되는 두 엄마들을 통해 표현된다.

 

 

위선의 영주, 위악의 미희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제일 흥미롭게 느껴졌던 두 인물들이 바로 영주와 미희이었다. 영화 내내 좀처럼 진심을 알기 힘든 캐릭터들인데, 그들의 거짓된 행동과 진실된 행동이 교차하는 순간순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느껴졌다. 

 

 

강인한듯 위태로워 보이는 영주(염정아)

 

 영주는 무서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눌러 참는 사람이다. 남편의 불륜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침착하게 행동하려 노력한다.  화를 내는 대신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고, 딸의 주먹밥을 챙겨준다. 미희에게 찾아갔을 때도 머리끄덩이를 잡는 대신 밥값만 내고 식당을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심지어 윤아를 처음 만났을 때도 밥은 챙겨 먹고 다니라며 친엄마도 하지 않는 걱정을 한다. 그리고 그 후엔 부탁하지도 않은 병원비도 내주고, 미희에겐 전복죽도 싸가고, 마지막엔 찌질함의 끝을 보여주는 남편까지도 챙기는... 아무튼 불륜 물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본처 vs 불륜녀의 캣파이트나 남편을 엿 먹이는 통쾌한 복수는 등장하지 않고, 아가페 사랑을 실천하는 성령 충만한 자매님의 모습만이 보인다. 학교에선 쌈박질에, 병원에선 추격전에, 하루 종일 뛰어다니다 결국 지쳐서 누워버린 주리에게 '머리 자르고 오는 길에 떡볶이 사 올까?'라며 짐짓 가벼운 목소리를 묻는 영주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분명 방금 전에 처음 만난 불륜녀를 밀쳐버렸는데 조산을 해서 병원까지 갔다 오고, 남편은 나 몰라라 도망가버렸고, 아빠에게 실망해서 엉엉 우는 딸을 데리고 밤늦게 집에 왔는데, 이제 머리를 자르고 떡볶이를 사러 간다고요? 이 억지스러움은 영주가 얼마나 강제적으로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며, 작위적인 평온함을 연출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힘겹게 연기하는 모습은 아마 영주가 상상하는 어른의 모습일 것이다. 아이 앞에서 만큼은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 내가 아닌 남들을 더 위하는 것. 주변의 현실이 무너져 내릴수록 그녀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더욱더 악착같이 그 위선적인 겉모습에 매달린다. 하지만 그 신념에 매달릴수록 영주의 모습은 더욱 위태롭게 보이기만 한다. 눌러 담은 감정들이 밖으로 삐져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럴 때 영주의 얼굴에 떠오르는 감정들은 너무나 날것 그 자체여서, 소름 끼치게 강렬하다. 식당에서 올 나간 스타킹을 바라볼 때나, 차 안에 흘린 미희의 피를 닦아낼 때. 작위적인 연기를 통해서 그런 감정들은 눌러 삼킬 때, 그녀는 진심으로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영주는 대원에게 네 사람을 기만했다며 비난하지만, 그녀는 그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인물이다.

 

 힘겹게 감정을 억눌러온 영주가 결국 참지 못하고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고해성사 씬과 윤아와의 식탁 씬이다. 미희가 조산을 한 것이 본인 탓일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고해성사를 통해 괴로움을 토로하는데, 그 후에 이어지는 영주의 본심은 앞으로의 그녀의 행동이 결국 위선임을 증명한다. '내 잘못이 아니고, 내가 미워하는 저 사람들이 정말 나쁜 사람들이어서, 저 애기가 저렇게 아픈 게 하느님이 내린 벌이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본인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 편리하게 생각하고 싶어 한다. 나중에 그녀가 내고 간 병원비를 갚기 위해 찾아온 윤아 앞에서 결국 울어버린 건 아마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껴서 그런 것이 아녔을까. 엄마가 저지른 일에 아이가 책임을 지겠다며 아르바이트 한 돈을 아낌없이 꺼내고, 심지어 모자란 돈은 나중에 갚겠다고 한다. 짐짓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영주가 윤아에게 '중요한 시기인 만큼 흔들리지 말라'라고 충고하지만, 윤아는 '주리 걱정이나 하세요'라고 받아친다. 어른들 모두가 외면해버리는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고 찾아온 윤아 앞에서 영주는 그런 충고를 할 자격이 있는 어른일까?  

 

 

입맛까지도 초딩인 과자 덕후 미희(김소진)

 

 미희는 영주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가진 인물이다. 딸을 위해 모든 걸 신경 쓰고 챙기는 영주와는 다르게 오히려 미희는 딸인 윤아에게 역으로 챙김을 받는 부모이다. 임신까지 해버린 엄마에게 정신 차리라며 꾸짖는 윤아와 왜 자길 이해해주지 못하냐며 화를 내는 미희. 미희는 꼭 버릇없는 아이처럼 악을 쓰고, 분에 못 이겨 성질을 부린다. 그녀는 스스로가 어른이자 부모라는 자각이 없어 보이며, 심지어 성장이 멈춘듯한 느낌까지 든다. 병원에서 주리를 만났을 때 그녀가 제일 먼저 찾는 것은 바로 꼬북칩. 새로 나온 맛이냐며 물을 때 미희의 표정과 말투는 너무나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그 자체로 보여서 놀라울 정도였다. 불륜 상대의 딸을 만나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꼬북칩이라니.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악의 없는 악이라는 게 맞는 말인가 보다. 일관되게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며, 주변 시선엔 아랑곳하지 않는 미희는 이 영화에서 제일 미성숙하며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캐릭터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에겐 그런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압도적인 몰입도를 자랑하는 대원과의 마지막 통화 씬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이 미희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화 넘어의 대원의 목소리에 안도하다가, 설마 하며 의심하다가, 인정할 수 없어 애원하다가, 결국 '마지막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의 배신에 상처 받고, 동시에 인정하고 싶지 않던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까지의 감정 변화가 물 흐르듯 펼쳐진다. 대원을 믿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딸까지도 적으로 취급한 그녀였는데. 지금까진 그녀와 '마지막 사랑'만이 존재하는 꿈같은 세계에 살며 현실을 배척했지만, 결국 그 꿈은 끝나버렸다.   

 

 

미희의 아갈머리를 확 찢고싶은 충동을 참으며 대신 죽을 만들어온 영주

 

 영주와 미희가 만나는 병원씬은 두 인물에게 있어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다. 전까진 불륜이 문제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던 미희는 이젠 스스로 한 행동에 대한 자각이 생긴 것처럼, 이전의 뻔뻔함은 수그러든 느낌이 든다. 꿈에서 깨어나버린 미희는 이젠 묘한 부끄러움과 수치심, 그리고 영주를 앞에 둔 이 상황에서 비참함을 느낀다. 건강을 염려하는척하며 죽을 챙겨 온 영주에게 제발 깔끔하게 한대 치고 떠나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영주는 그렇게 쉽게 미희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녀는 미희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이었으니. 

 

 변화된 미희 앞에서 영주 또한 가면을 벗고 진심을 들어낸다. '바람 한번 피워보세요. 그게 생각대로 되나'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미희를 보는 영주의 얼굴에는 아주 찰나의 순간에 살벌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게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가감 없이 털어놓는 불륜녀의 모습을 아마 영주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희의 힘들어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 동시에 선하고 자비로운 스스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찾아왔으나, 오히려 생각보다 멀쩡한 그녀의 모습에 좌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순간 영주는 모든 걸 내려놓고 진심을 털어놓는다. 가식적인 위로를 주고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그리고 그걸로 살아갈 힘을 얻고 싶었다고.

 

 다른 곳에선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어버린 두 사람. 서로가 미치도록 보기 싫은 상대일 텐데, 이상하게도 이 순간 서로의 본심을 들어내며 오히려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김윤석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희의 아이, 못난이를 "예수"에 비유한다. 못난이의 죽음으로 어른들의 죄를 사하고 새로운 기회를 준 것일까? 못난이의 죽음 후에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영주는 불량 청소년들한테 얻어터진 찌질한 남편을 챙기며 결국 이전처럼 작위적인 가족의 평온함을 유지하고, 미희는 윤아가 꺼내 주는 김치와 라면을 먹으며 끝까지 챙김을 받는다. 하지만 못난이는 잊히지 않았으며, 어른들의 죄도 사해지지 않았다. 윤아와 주리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못난이를 기억하고, 어른들의 무책임했던 행동 또한 기억한다. 겉으로는 전과 다를 바 없지만 정말로 어른들은 변화하지 않았을까? 변했을지언정 그들은 '어른'이기에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며 언제나처럼 위선 혹은 위악의 가면을 쓰는 그들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더욱 안쓰러워 보인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라지만, 영주와 미희의 변화 가능성을 영화가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줬다면 진정한 의미의 성장물이 될 수 있었을 거 같아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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