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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 줄거리 및 해석

이 리뷰에는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형 스타일리쉬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명작. 2003년 개봉작인 이 영화는 개봉한 지 15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공포 영화에는 관심이 없어서 보지 않았다가, 염정아 배우의 팬이 되고 이제야 각 잡고 보게 되었다. 장르는 공포이지만 무서움보단 슬프고 먹먹한 감정이 드는 작품이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낳고, 그 결과 죄책감 속에서 미쳐버리는 개인의 고통을 충격적으로 그려낸다. 

 

 

보면 볼수록 배우들 조합이 역대급ㅠㅠ

 

줄거리

 

서울에서 요양을 마친 언니 수미(임수정)와 동생 수연(문근영)이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같이 살게 되면서 겪는 갈등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죽은 친엄마를 대신해 동생 수연과 아빠를 챙기는 수미. 그리고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예민하고 히스테릭한 새엄마 은주. 수미는 친엄마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앉은 은주를 증오하며, 은주는 친엄마를 쏙 빼닮은 수연에게 화풀이를 하며 학대를 일삼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충격적인 반전이 존재하는데, 바로 동생인 수연은 이미 죽었고, 새엄마 은주는 수미의 또 다른 인격이었던 것.  영화 내내 등장하던 4인 가족은 수미가 보던 허상이고 실제로는 수미와 아빠 단 둘이서만 살았던 것이다. 

 

 수연이 죽게 된 상황은 이러하다. 남편의 불륜으로 인해 절망한 친엄마는 옷장 안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한다. 그리고 수연은 우연히 그 시신을 발견하고 꺼내려다 옷장을 넘어트려 그 밑에 깔리게 된다.  옷장이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와서 상황을 본 은주는 순간 못 본 척하고 나오지만 다시 구하러 돌아가는데, 하필 그 순간 복도에서 수미와 만나 말다툼을 하게 된다. 수미의 무례함에 화가 난 은주는 수연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수미가 집 밖으로 나가도록 놔둔다. 

 

 

지금봐도 살벌한 염정아와 임수정의 눈빛 연기

 

"너,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게 될지도 몰라. 명심해."

 

 수미는 그날 결국 죽어가는 수연을 저버린체 돌아섰고, 은주의 말대로 수미는 극심한 후회와 죄책감으로 해리성 장애를 겪으며 정신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수연과 친엄마의 영혼은 이승을 떠돌게 된다. 

 

 이 반전은 지금까지 등장인물들의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까지 스쳐 지나갔던 물건들, 그리고 이 집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은 수미의 현재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된다. 

 

 

떨쳐 낼 수 없는 죄책감

 

 수미는 영화 내내 과잉보호처럼 보일 정도로 수연의 곁을 지키며 헌신하는데 언니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후회와 죄책감 때문이다.  특히 수연은 친엄마를 똑 닮은 외모는 물론 소극적인 성격도 친엄마와 비슷해서, 수미의 보호적인 모습은 지키지 못한 친엄마를 구하고자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은주가 애지중지하며 키운다는 두 마리의 새는 수연과 수미를 상징한다. 언제 깨질지 모르는 여리고 순수한 존재들. 새장 밑에서 둘이 나눈 대화도 의미심장하다. 

 

 

 

 

" 죽여버릴까? "
" 날려 보내... "
" 그 여자가 가져온 유일한 물건인데 건드리면 난리 날걸"

 

 은주에게 가장 소중했던 새. 그리고 수미에게 가장 소중했던 수연. 새와 수연 둘 다 다른 이들의 다툼에 죄 없이 희생되어 버린 억울한 생명이다. 새들을 날려 보내자는 수연의 말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살고 싶어 했던 의지가 엿보인다. 새들의 죽음은 비극적인 두 자매의 삶과 일맥상통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 그 자체였던 은주 역의 배우 염정아 

 

죄와 벌 

 

묘하게 비현실적이며 과장된 느낌의 새엄마는 수미가 상상하는 절대악의 인물이며,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인격이다. 현실의 수미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든 장본인이기에, 수미가 증오해 마지않는 존재다. 수미를 매섭게 말로 몰아붙이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악랄하게 수연을 괴롭히는 악독한 계모. 수미의 허상 속에서 은주는 절대악이고 수미는 선의 역할을 되어, 은주에게서 수연을 구해내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만듦으로 수미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하지만 은주는 독립된 존재가 아닌 결국 수미와 같은 사람이며, 수미는 선과 악을 동시에 연기하는 인물이다. 은주가 내뱉은 가시 돋친 말과 폭력적인 행동은 수미 스스로에게 가하는 자해와 같다.

 

"너 진짜 무서운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 날 도와줘 "
"그래, 내가 널 도와줄게. 여기서 끝내자. "

 
자신을 죽이려는 은주에게 도와달라고 말하는 수미. 은주는 수미가 과거의 기억을 잊을 수 있게 돕는 장치와 같다. 벌을 받음으로써 속죄하고자 하는 수미는 은주를 통해 스스로에게 고통과 시련을 부여한다. 하지만 그 어떤 벌로도 씻어 낼 수 없는 죄의식은 그녀를 끊임없이 옥죄고,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악몽을 꾸게 한다. 이 영화의 유명한 OST인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제목만으로 이 영화의 주제를 요약한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선택은 번복할 수 없기에, 이 고통스러운 기억과 죄책감으로부터 수미는 영원히 자유로워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바뀐 시간이 아니라 바뀌기 전의 시간이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영화 초반에 수미가 처음 방에 들어서는 순간 엔딩을 암시하는 중요한 물건이 등장한다. 시간이 멈춰버린 고장 난 벽걸이 시계. 그리고 그 시계가 멈춘 시각은 바로 12시 45분, 수연이 죽던 날 장롱이 쓰러진 소리를 들은 시각이다. 그 시간에 멈춘 시곗바늘을 수미는 일부러 돌려버린다. 꼭 그 시간을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수미의 삶은 그 시계처럼 그 사건이 일어난 12시 45분에 멈춰버렸지만, 그녀는 그 순간을 차마 기억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다. 그 날 돌아서지 않았던 그 자신을,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을 다시 마주한 것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수미가 만든 허상의 세계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수미의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곗바늘이 12시 45분을 가리키고, 수미가 현실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극적인 영화는 영원히 고쳐질 거 같지 않은 고장 난 시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시계가 꾸는 악몽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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