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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단간 쥔공이 여캐구나!'라며 신나게 다운을 받았는데...

독특한 설정과 괴랄한 전개, 통수의 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유명한 추리 어드벤처 게임 '단간론파' 시리즈는 지난 10년간 단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러스트만 보면 '이 씹덕겜은 뭐야...;;' 싶은데 시작하고 나면 멈출 수 없는 중독성을 가진 작품입니다. V3는 단간론파의 4번째 게임이자 (1,2는 게임으로, 3은 애니로), 단간론파 제작진이 춘소프트를 퇴사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춘소프트에서 의지가 있다면 이 시리즈를 이어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V3가 단간론파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선 정식 발매가 취소되어버린 비운의 작품이지만, 저는 해외라서 스팀을 통해 다운받고 유저 한글 패치를 깔아줬습니다. 근데 한글 패치에 문제가 있는 건지 게임이 엄청 느리고 뻑뻑하게 돌아가더군요;; 설정에 들어가서 그래픽 좀 낮춰주고, 이것저것 바꿨더니 그래도 그럭저럭 돌아갑니다. 

 

단간 1,2편은 호평이었지만 애니로 나온 3에서 욕을 잔뜩 먹고 키보가미네 시리즈가 끝났기 때문에, V3는 기대보단 걱정이 더 많았습니다. 1,2편을 통해서 보여줄 건 다 보여준 느낌이고, 특히 2편의 어마어마하게 강렬했던 엔딩을 뛰어넘는 스토리가 나오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V3 후기를 보니 역시나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이 많아서 기대치를 많이 내려놓고 시작했는데..... 세상에... 이렇게 골 때리게 재미있다니!!! 이런 갓겜을 왜 재미있다고 말 안 해준 거야 이 사람들아!!(그러고 보니 한국에선 이걸 할 수가 없구나...ㅠ)

 

저의 눈물 버튼이 되어버린 드뷔시의 달빛...

살인 트릭이나 각 챕터별 반전은 1,2편을 뛰어넘는 수준이며, 단간론파 특유의 몰아치는 엔딩 또한 여전한데, 이번의 반전은 2편의 엔딩이 주었던 충격을 뛰어넘습니다. 단순히 반전을 위해 반전을 쑤셔 넣는 그런 허술한 스토리가 아니라, 오프닝 영상이나 프롤로그에서부터 떡밥을 뿌리며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초반에는 1,2편의 그림자를 밀어내기 위해 의식적으로 비틀어서 반전을 넣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챕터 1에서는 시작부터 주인공 아카마츠와 미스테리한 능력자 아마미가 아웃되어 버리죠. 아카마츠는 당연히 주인공이니까 살 것 같았고, 아미미처럼 능력을 잊어버린 캐릭터들은 언제나 중요 캐릭터로 등장했기 때문에 얘도 나름 생존할 것 같았는데...ㅠㅠ 하지만 아카마츠는 수상한 행동들을 너무 많이 해서 재판 전부터 페이크 주인공이라는 게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단간론파 주인공이 드디어 미소녀구나 싶었는데ㅠㅠ.... 아마미랑 비주얼 합 좋다고 혼자 좋아했는데 둘 다 죽고 충격이 커서 잠시 게임 중단했습니다ㅋ큐ㅠㅠㅠ 하지만 이때 충격은 정말 새발의 피였던 것... 

 

챕터 4에서 오마가 대놓고 흑막이라고 스스로의 정체를 밝힐 때 저는 제작진이 1,2편의 스토리를 너무 의식해서 일부러 흑막을 수상하게 만든 줄 알았습니다;; 1,2편의 바쿠야, 코마에다의 뒤를 잇는 트롤+돌아이 캐릭터가 바로 오마인데, 기존의 트롤러들은 항상 '나쁜 놈 같지만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닌' 컨셉이었으니까, 이번에는 좀 다르게 정말로 나쁜 캐릭터를 만든 줄 알았습니다.  '제작진들 감 다 죽었네 흑막 정체 너무 김 빠짐ㅉㅉ' 라고 잠시 생각했던 똘추가 바로 저입니다ㅠㅠ

 

그렇게 하루마키를 위해 몸을 던진 모모타, 모노쿠마를 이기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린 오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만... 챕터 6에선 그 눈물이 쏙 들어가고 대신 눈알이 튀어나오는 전개가 됩니다. 

 

네, 이 모든 건 다 페이크였습니다^^ 그리고 흑막의 정체는 바로 저였네요^^.... 

 

로코의 정석을 보여주던 모모타x하루마키ㅠㅠ

이전의 키보가미네 학교는 물론 지금까지 일어난 살인게임들은 모두 '단간론파'라는 게임의 내용이었고, 이번 V3는 그런 픽션의 설정을 차용한 현실 게임이었던 것입니다 (V3라는 이름도 53번째 게임이라는 뜻...). 그리고 이 단간론파라는 시리즈, 살인게임을 지속하게 만드는 흑막은 바로 이 컨텐츠를 소비하는 단간론파의 팬들이었습니다. 바로 너와 나^^... 

 

아니, 물론 단간론파가 픽션인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게임에서 대놓고 '이건 다 구라야!!!'라고 말을 하니 몰입도가 와장창 깨져버리더군요;;; 지난 몇 년간 게임, 애니 등을 통해 꾸준히 쌓아놓은 단간론파 설정들을 한방에 다 날려버리는 미친 짓을 하다니;;;; 심지어 V3에 나온 캐릭터들은 과거 기억+성격 모두 다 개조가 되어버린, 픽션 캐릭터들처럼 설정을 부여받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제가 본 캐붕 중 정말 역대급 캐붕인 듯... 이걸 캐붕이라고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실제론 의심많은 성격의 아카마츠...

재미있게 플레이하다가 갑자기 흑막이라고 욕먹음 + 지금까지 덕질하던 캐릭터들 설정 다 가루 됨 = 플레이어 멘탈 개박살...

 

게임 내에서 시로가네가 친절하게 말해주듯, 픽션의 '절망'이 정말로 모니터를 넘어 현실로 침범하는 느낌이었습니다;; 1,2편에서 표현하던 절망은 게임 안의 캐릭터들 한정이었는데, V3의 절망은 현실의 플레이어들이 타켓이었던 것입니다. 순간 현타가 확 오면서도 동시에 '도대체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런 미친 전개를???' 라고 생각하며 정신없이 플레이를 하게 되더라고요. 마무리는 희망도 절망도, 픽션도 현실도 아닌, 주어진 선택지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해나간다는 나름 해피/열린 엔딩입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선 슈이치와 일행들을 살린 것이 결국 플레이어들의 선택이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저처럼 멘탈 나간 플레이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줍니ㄷ....아니, 위로를 주긴 주는데, 챕터 내내 플레이어 욕하다가 막판에 이렇게 태세 전환을 하니 어떻게 받아 들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스토리가 너무 말도 안 되게 재밌고, 말도 안 되게 골 때리는데, 동시에 왜 호불호가 갈렸는지도 확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제 멘탈을 들었다 놨다 한 게임이 있었나 싶습니다. 확실한 건 이런 스토리로 게임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다니, 단간론파 제작진들은 정말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ㅋㅋㅋ 이게 최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장 단간론파다운 모습으로 시리즈의 막을 내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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