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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나면 더욱 와닿는 제목

얼마 전에 네이버 웹툰에서 '내일'이라는 작품을 정주행 했는데, 위안부 생존자들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이 영화 관련 댓글이 달려 있더라고요. 몇 년 전에 나문희 배우님이 이 작품으로 여러 상을 타신걸 얼핏 기사 제목으로 보았고, 포스터를 보고 '노잼 같다'라고 생각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댓글을 보고 나서야 '이런 내용이었어???'라는 깨달음을 얻고 뒤늦게 영화를 찾아보았습니다. 

 

예고편을 보면 억세지만 귀여운 할머니와 고지식한 공무원이 영어 레슨을 하며 벌어지는 우당탕탕 코미디 같아 보이지만, 사실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라는 굉장히 무거운 주제를 다룹니다. 영화 중반까지도 위안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가 나중에 드러나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봤다면 굉장히 놀랐을 반전입니다. 동네 이웃이 어깨를 잡았을 때 화들짝 놀라던 옥분 할머니의 반응이나 가족 없이 평생을 살아오셨다는 이야기 등이 모두 복선이었던 것이죠. 

 

영화를 다 보고나면 피가 끓어오른다...

무겁고 자극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주제를 이 영화는 경쾌하면서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가볍게 취급될 수 있는 장르인 코메디물이지만 주제가 주제인만큼 사실적 고증에도 많이 신경을 썼습니다. 미국 의회 증언 장면은 실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의회에서 촬영되었다고 하며, 영화 속 위안부 증언자들의 사연은 모두 실존 생존자들의 증언에 바탕을 두었습니다. 연출은 일본군들의 가학적인 행위보다는 피해자들이 가진 상처와 그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서 말하기까지 필요했던 용기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신파를 위한 억지스러운 과장 없이도 이 영화는 담담하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립니다. 

 

옥분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이웃 주민인 진주댁이 어떻게 여태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냐며 섭섭함을 털어놓고 같이 우는 장면이 있는데, 극적인 연출이나 음악을 완전히 배제하고 인물들에게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서 저는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손에 휴지를 쥐고 펑펑 울었습니다. 피해자들이 평생 듣고 싶었을 위로의 말을 진주댁이 대표해서 해준 것만 같았거든요. 옥분 할머니는 남동생의 앞길을 막지 말라며 자신을 구박하던 어머니의 묘 앞에서 덤덤하게 원망의 말을 뱉습니다. 피해자들은 그 끔찍한 지옥에서 생존해 돌아온 후에도 제대로 된 보호는 커녕 부끄러운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에게 외면받고, 스스로를 숨기라고 강요받으며 평생을 살아오셨던 할머니는 제대로 된 위로를 진주댁에게서 처음 듣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감동과는 별개로 영화 자체의 스토리엔 구멍이 여기저기 뚫어있습니다. 옥분 할머니는 과한 오지랖과 신고정신으로 이웃들이나 공무원들과 많은 갈등이 있었는데, 옥분 할머니의 이야기가 신문에 나온 후로는 모두의 태도가 180도로 바뀝니다. 처음엔 기억조차 하기 싫다며 냉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던 옥분 할머니의 동생은 막판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찾아옵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의 과거에 대해 전혀 몰랐으니 태도가 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동생은 도대체 뭐죠...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외면한 거 아녔나요? 옥분을 부끄럽게 여기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외면하다가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변했다고 이해해야겠죠. 영화 전반부에서 가장 큰 갈등의 요소였던 시장 재개발 문제는 위안부 이슈가 등장하자 귀신같이 증발해버립니다. 엔딩에서 결국 가게들이 멀쩡한 걸로 보아 재건축은 없던 일이 된 모양인데, 어떻게 문제가 마무리된 건지 전혀 설명이 없어서 어리둥절하게 됩니다. 민재가 사진을 들고 미국 의회에 들어오는 장면은 뭐... 솔직히 몰입이 살짝 깨지긴 했는데 그냥 영화적 표현이라고 이해해야겠죠. 

 

아직 현재 진행중인 우리의 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ㅡ 이제는 말할수 있다는 용기 있는 외침. 언제쯤 그 외침에 제대로 된 답을 들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용기내어 뱉은 말은 공허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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